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필립 마운트배튼 (문단 편집) ==== [[프랑스]] 생활 ==== 1923년, 안드레아스 왕자 일가는 마리 보나파르트 왕자비의 도움으로 [[프랑스 파리]] 근교 생클루드에 정착해 그녀가 소유한 [[별장]]에서 생활한다. 이 때 필리포스는 생후 18개월이었으며, 생클라우드에는 마찬가지로 [[그리스]]를 떠나 망명 온 사촌누나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나|켄트 공작부인 마리나]]의 가족들도 살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61ABFF3-45F4-4FE4-94EC-BD9CE5158BDF.jpg|width=100%]]}}} || || '''1927년, 6살''' || 유럽 각국의 부유한 친척들[* 에드위나 애슐리, 낸시 리즈(아나스타샤 왕자비), 마리 보나파르트 등. 에드위나 애슐리는 필리포스의 외숙모로 [[루이 마운트배튼]]의 부인, [[에드워드 7세]]의 재정관리인이었던 외할아버지 어니스트 카셀의 상속녀였다. 낸시 리즈는 필리포스의 숙모로, 그리스와 덴마크의 크리스토프 왕자의 첫째 부인, 철강왕 윌리엄 리즈와의 2번째 결혼에서 큰 돈을 상속받았다. 마리 보나파르트는 필리포스의 백모로, 그리스와 덴마크의 요르요스 왕자의 부인, [[몬테 카를로]]의 카지노를 설립한 외할아버지 프랑수아 블랑의 상속녀였다.]은 필리포스의 학비를 대줬고, 필리포스는 [[프랑스 파리|파리]]에 있는 미국식 신설학교인 맥자넷 아메리칸 스쿨(McJannet American school)에 입학한다. 맥자넷 스쿨은 필리포스를 따뜻하게 맞이했으며, 학생들이 다양한 외국 문화를 배우며 사람들의 차이점을 존중해 나가는 것이 교육 이념이였다. 어머니 앨리스 왕자비는 학교의 창립자이자 교장이던 도널드 맥자넷에게 아들의 활달한 성격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지도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리고 필리포스가 미래에는 [[영어]]로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말하는 곳에서 지낼 것이기 때문에]] 미국/영국식으로 교육되고 영어를 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맥자넷 전기, 앨리스 왕자비가 교장에게 전한 말. 원문: Instead of being constantly hushed up he should be working off his boundless energy by practicing games and learning Anglo-Saxon ideas of courage, fair play, and resistance. Philip should develop English characteristics, because his future will be in English speaking lands, perhaps American, and I want him to learn English well.]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8860FD01-A2D2-485D-9322-E2D26EC6DB6F.jpg|width=100%]]}}} || || '''맥자넷 아메리칸 스쿨 급우들과 함께 (가운데 금발머리)''' || 필리포스는 운동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아이였고, 뛰어나진 않았지만 학업에도 충실했다고 한다. 매일 아침 30분 일찍 [[가정교사]]와 함께 등교해 [[칠판]]과 책상을 정리했으며, 누나들이 말해준 예의범절 같은 충고를 언급하던 모범적인 학생이었다고.[* 뿐만 아니라 항상 방문자들을 위해 의자를 가져다주고, 여자들이 자신을 위해 음식을 가져다 주는 일이 없도록 직접 [[부엌]]에서 음식을 가져왔다고 한다.] 학교를 너무 좋아해 어머니 앨리스에게 [[기숙사]]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당시 안드레아스 일가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맥자넷 스쿨에서 필리포스는 ‘성이 없는 남자아이’라고 불렸다. 이 시기 동안 가장 친한 친구는 프리맨 쿠(Freeman Koo, 顧裕昌 구유창)와 웰링턴 쿠 2세(Wellington Koo, Jr., 顧福昌 구푸창)라는 [[중국인]] 형제였다.[* 당시 프랑스 주재 [[중화민국]] [[대사]]였고, 나중에 주 영국, 주 미국 대사, 대총통 권한대행까지 지낸 [[구웨이쥔]][[https://en.m.wikipedia.org/wiki/Wellington_Koo|웰링턴 쿠(Wellington Koo, 顧維鈞)]]의 아들들이다. 이 둘은 학교에서 칭칭 차이나맨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필리포스는 평생동안 맥자넷 부부를 기억했고 그들에 대해서 매우 높게 평가하고 애정을 담아 말했다. 1970년대까지도 도널드 맥자넷과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맥자넷 부부는 필리포스가 1947년에 [[엘리자베스 2세|엘리자베스 공주]]와 혼인했을 때 학교 앨범을 선물했고, 첫 아들 [[찰스 3세]]가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자 ‘아버지가 어린 아이였을 때’라는 필리포스의 학교 생활에 관한 책을 보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PrincePhilip1925.webp|width=100%]]}}} || || '''1925년 베르크 해변에서 필리포스와 친구 헬렌 코뎃'''[* 헬렌 코뎃은 영국의 여배우로 필립의 불륜 상대로 자주 지목된다. 엘레니 포우푸니스가 본명으로, 필리포스와 소꿉친구였다. 포우포니스 가족은 꽤나 부유한 프랑스에 살던 그리스인 가족이었다. 필리포스의 어머니 앨리스 왕자비와 엘레니의 엄마, 필리포스의 유모와 엘레니의 유모는 친구였다. 포우포니스 가족은 베르크 해변가에 별장이 있었다. 필리포스네 가족이 해변가로 휴가를 나왔을 때 누나 [[그리스와 덴마크의 카이킬리아|카이킬리아]]와 [[그리스와 덴마크의 소피아(1914)|소피아]]와 필리포스는 엘레니, 엘리니의 남동생 라이니, 여동생 리아와 함께 놀았다한다. 헬렌 코뎃은 60년 후에 이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어릴 때 필리포스를 매우 질투했어요. 내가 필리포스를 싫어한 만큼 필리포스는 나를 싫어한 것 같진 않지만, 내 감정은 주로 질투였습니다. 모두들, 특히 우리 엄마는, 필리포스가 잘생긴 아이라고 좋아했어요! (참고로 엘리니의 엄마의 회고록에 따르면 예전에 사람들은 자신보고 필립의 보호자인지 가정교사인지 계속 물어봤는데, 그 어느것도 아니였지만 자신의 아이처럼 필립을 사랑했다고 함.) 우리 아빠는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새아빠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고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금발 벽안의, 이 [[독일인]]처럼 생긴 작은 아이가 우리집에 오고, 우리 엄마가 그 아이에게 너무나 많은 관심을 쏟을 때면 나는 매우매우 화났어요. 필리포스와 내 동생 라이니는 작당해 맨날 나를 괴롭혔어요.”라고 말했다. 이후 그들은 헤어졌지만 새아버지가 사망하고 가세가 기운 이후 필리포스가 15살 때 런던에서 다시 만났다고 한다. 필리포스는 헬렌이 첫번째로 결혼할 때 신랑 들러리가 되어주었고, 2번째 결혼으로 낳은 아이들의 대부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헬렌의 아들 맥스에게 고든스턴 학교를 권유했으며, 헬렌의 필립이라는 손자도 고든스턴에 갔다. 그들은 친구였지만 불륜상대로 지목된 이유는 첫 남편과 이혼하지 않고 별거 중에, 두 번째 남편이 될 애인과 아들 맥스를 낳았기 때문에 아이의 아버지를 사람들은 궁금해 했다. 근데 필립이 맥스의 대부가 되어주었기 때문에 불륜 상대로 지목돼 버린 것.] || 생클루드에 있던 집은 [[정원]]이 딸린 예쁜 저택이었으며, 이곳에서 모두가 함께 생활했다. 비록 불안정한 환경이었지만 가족들은 막내 필리포스를 매우 귀여워했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휴일에는 가족과 함께 바닷가로 [[피서]]를 가거나 친척들을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아직 어렸던 필리포스는 [[프랑스]] 생활에 금방 적응해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9087232-FFC5-42BE-81CA-E29E47708DCC.jpg|width=100%]]}}} || || '''1928년 10월 촬영된 마지막 가족사진''' || 위의 사진을 찍고나서 몇 년 후 가족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으며, 필리포스의 안온한 생활도 막을 내린다. 먼 훗날 그는 프랑스 망명 시절을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회고한다.[* 그가 느끼기로는 그저 평범한 가족의 삶과 다름이 없었으며,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적이 없다고 밝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